◇최초의 우리말 성경 ‘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예수셩교 누가복음젼서'(1882
년)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선교사였던 존 로스(1842~1915)와 존
매킨타이어(1837~1905), 조선인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한국어 성경이다. 이들은 중문성경 ‘중국어문리역’을 기본으로 번역 작업을
진행했으며, 1882년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시작으로 1887년까지 신약 27권을
모두 번역해 ‘예수셩교젼서’를 완성했다.
로스가 중국 선교사로 상하이에 도착한 것은 1872년 8월23일이다. 당시 30세였던
로스는 아내 스튜어트가 중국에 도착한 이듬해 3월 출산 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는 아픔을 겪는다. 갑작스러운 사별을 겪은 로스는 만주 선교에 평생
헌신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윌리엄 목사로부터 “6년 전 토머스 목사가 대동강에서 한국
선교를 위해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들어가다가 순교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선배
선교사의 한국 선교 열정에 감동을 받은 로스는 결혼 1년 만에 겪은 사별의 슬픔을
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대로 아시아의 마지막 땅
조선에 복음의 문을 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조선인과 로스의 운명적 만남은 18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스는 1875년
선교부의 지시에 따라 중국 유현(維懸)에서 매킨타이어와 동역했다. 1876년 한국어
공부를 위해 어학선생을 물색하던 중 봉천(현 선양)에서 월 4 냥의 월급을 주는
조건으로 한국어 교사를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이응찬이었다. 당시 조선은 엄격한
쇄국정책 속에서 외국인과 접촉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으며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878년 봄까지 이응찬과 동향 친구 몇 명이 로스와 요한복음,
마가복음 번역 작업을 진행했으나 주변의 고발 위협으로 잠시 중단하게 된다.
◇복음 전도·한글 보급 계기 마련한 ‘ 선각자’=성경 번역 작업은 매킨타이어와
같이 진행됐다. 성경 번역 작업은 말씀 연구, 신앙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졌고 이들
초기 멤버들은 의주교회의 초석이 됐다. 1879년 3월에는 한국인 번역자 중 한 명이
세례를 요청했는데 이것이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세례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자료에
이름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는 묵묵히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를 마음에 품은 한국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일 것이다. 말씀의 능력은 복음에 무지한 조선인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도구로 만들었다. 이후 백홍준과 전직 관리, 서울 출신 학자 등이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나중에 목숨을 걸고 성경을 가슴에 품은 채 조선 땅에
입국한다.
1879년 로스가 2 년간의 안식년 휴가를 얻어 본국으로 떠난 사이 매킨타이어는
이응찬 등 조선인과 함께 성경을 번역했다. 로스는 1881년 9월부터 1886년 가을까지
매킨타이어 번역팀이 만들어놓은 신약전서 번역 원고를 수정하고 다듬었다. 번역에
따른 비용은 영국성서공회(BFBS, 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와
스코틀랜드성서공회(NBSS, The National Bible Society of Scotland)가 지원했다.
BFBS의 자료에 따르면 1883~86년 조선에 보급된 한글성경은 총 1 만 7609
권이었다.
샬롬
강용훈 목사